긴 호흡의 작업을 하고 있다
2018년 여름에 시작되어 2020년 6월에 촬영이 끝나고 10월인 지금까지 편집을 하고 있는데.
지난 두달은 집 밖으로 나간 적이 몇번 없다.
비대면으로 하는 활동들이 늘면서 집 안에서 더욱 바빠지고 밖으로 나가는 일들이 비효율적인 활동 같이 되어버렸다.
담배를 피러 나가는 집 앞 마당에서 매일 노을을 맞는다
여름 끝 자락에서 가을로 막 넘어 갈 때 쯤 친구 몇몇이 구름 인스타그램을 만들었다
친구들에게 구름 감사 사회 cloud appreciations society 말하자면 구름 덕후들의 웹페이지를 소개 시켜주었다
매일 새롭게 만나는 구름과 달만큼 언제봐도 신기하고 반가운 친구들이 또 있을까
덕분에 편집이 조금 덜 외로웠다
001.txt#1113
#0333
#0334
#0336
#0335
#0337
#0339
#0338
#0265
#0424
#0425
#0573
#0575
#0576
#0574
#0578
#0577
편집이 11월까지도 끝나지 않았다. 5개월째 편집을 하고 있던 셈이다. 사람들도 거의 만나지 않고 집 안에만 있다보니 매일 같은 풍경에서 환대의 순간을 발견하기 쉽지 않다. 데드라인이 일상을 완벽히 삼킨 느낌.
편집을 촬영보다 좋아하지만 기술적 세심함이 중요해지는 편집 후반부에는 몸의 모든 장기가 시청각을 위해 존재하는 것 같이 매우 피곤하다.
가편 시사를 할 때마다 긴장했다가 이후 며칠 편집에서 손을 놓게되어도 새로운 편집을 위해 어쩔수 없이 필요한 휴식 같은 생각이 든다.
이번 편집 기간은 요가도 하고 걷기도 하며 균형있는 삶을 살 거라 다짐했지만 결국 편집 기간 동안 골반이 뒤틀려 생전 처음 도수 치료를 받았다. 너무 아팠다.
환대의 기억의 조각을 모아보기로 했다. 환대를 받았던, 환대 했던 순간들의 다양한 질감을 떠올려 보며 조금 더 자유롭게 접근 하기로 했다.
009_환대의기억의조각.txt#1111
011_뚝섬.mp4#0585
012_야스민과_서울에서본_저녁_한강01.mp4#0584
012_야스민과_서울에서본_저녁_한강02.mp4#0579
#0422
안녕 야스민
너의 부재 속에서
어떻게 이 영화를 만들어나갈지 생각하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어
내 카메라 속 너의 편지를 발견했을 때
난 뭐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
가끔 생각해봐
섬을 떠나며 너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너는 이곳을 어떻게 기억할까?
알려줄게 있어
여기 친구들에게 너의 편지를 전달하고
너의 기억에 함께 하기를 제안해보려 해
네가 본 2018년 제주의 여름
무척 보고싶다
제주에서 사랑을 보내며
그레이스
<섬이없는지도> 보이스오버 중
012_야스민에게.txt#1112
#0423
013_추석윷놀이_강정할망물식당.mp4#0583
014_먹구름을_그위에서맞이하기01.mp4#0582
014_먹구름을_그위에서맞이하기02.mp4#0581
014_먹구름을_그위에서맞이하기03.mp4#0580
"야스민이 다시 사는 방법은 어떻게 찾아나가고 있을까 궁금하더라.
정말 낯선 곳에서. 걱정은 되는데. 알려주기는 어려운 것들.
사는 법. 그동안의 문화가 갖고있었던 거에서 자신들이 완전 낯선곳에서
다시 시작하는 건 전혀 내 머리속에 좀 그려지지 않아.
그게 얼마나 두려운건지도 감히 그려지지 않는 거 같애.
내가 느끼는 사는 방법은 좀 안정적인 상태에서 사는 법을 고민하는거지
야스민처럼 통째로 삶이 다 조각난 다음에 다시 새로운 곳에서 이렇게 깨진 유리병 붙이듯이
자기를 만들어가는 과정과는 차원이 다르거든.
그게 아침에 보는데 느껴지더라. 근데 기록이 되면 참 좋겠다.
그 친구의 삶이. 수많은 야스민 같은 친구가 위로받을 거 같애.
힌트. 힌트같은 게 되어줄 수 있을 거 같애.
그러게. 노트를 다 써버렸어.
노트 다 써가고 있어서 이제 다이어리 부분에.
뒤쪽을 다 써버려가지고."
-그린씨 2019년 12월 사려니숲
015_그린씨2019년12월대화.txt#1074
편지, 기억
지도
Letter of map
From Island
To 섬
카메라
제주개발공사
그물
물마루
구멍난 지도
구멍난 섬
섬구멍
물마루
없는지도
구멍에서 자라나는 것은
접촉지도 Contact Map
광경 Sight
관광 Sight- Seeing
없는 섬의 지도
섬이없는지도
Map Without Island / Map Without Isle
Maybe there is no island
섬에없는지도
Map doesn’t exist in Island
Maybe it’s not in the island
Sight-acting
Sight-performing
관광 수행
부재중 In Absence
부재지도 - 없는지도
아마도 섬 Maybe Island
야스민의 섬
망명 안내 Exile Guide
망명가이드
안내
부재 관광
방랑 가이드 vagabond
제주관광공사
망명축제
자유여행
World Class Jeju
016_영화제목들.txt#0656
#0657
2019년 12월에 보낸 편지
지난 여름 일련의 에피소드를 겪으며 “‘감정’이란 결국 내 경험을 상대방에게 투영하는 것이며 이는 서로를 이해하고 있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공감’ 이 라는 것은 사실 ‘같은 감정을 갖는다’라기 보다는 ‘함께 감각한다’라는 것에 더 가까울 수 있겠다”라는 것도요.
예를 들면 바스락거리는 시간의 물체가 내 손에서 다른 이의 손을 거쳐 또 누군가의 머리로, 가슴으로, 다리로 연결되어 있는 상태. 한 명의 미세한 움직임도 그 얇고 나풀거리는 끈을 따라 파동으로 전해져 우리 모두 느끼게 되는 것이 공감이 아닐까 궁금해집니다.
그렇게 각자의 몸에 엉키어 있던 개인의 시간이 우리 사이에서 또 우리 밖을 향하여 공명 하는 순간을 포착해 보고 싶습니다.
단절된 시간은 망각의 강을 이루지만 이어진 시간은 기억의 바다로 흘러갑니다.
어떤 조율을 거치면 우리는 물의 공동체가 되어 함께 흐를 수 있을까요?
그것은 눈에 보여지는 것입니까?
이 질문을 품은 우리의 영화가 당신을 시간을 담는(capture) 렌즈가 아닌 건져 올리는 (recover) 그물망이 되길 바랍니다.
그물이 교차하는 꼭지점마다 서로가 ‘되어’ 감각할 수 있기 를.
그리고 야스민과 제가 함께 경험했던 ‘친구가 되는 방법’이 당신에게도 꼭 유효하기를 바라며.
017_시간물체.txt#1073
#0658
#0279
#0280
"벌레의 울음소리로 만난 호숫가
The lake I met through the crying sounds of beatles
아직도 물이 두려워 구경만 하네
Still in fear of water watching it from afar
자기 손에 물을 적시기 않으면
If I don't soak my hand in water
씻을 수도 없다는 사실을 읊조리네
I won't even be able to wash, I mutter
벌레의 울음소리가 웃고 있는가
Are the crying beatles smiling?"
태히언 <호숫가> 가사 중
2018년 9월 6일 비자림로시민문화제
송당리 주민들의 항의로 문화제가 중단되기 전 불렸던 노래
편집을 하며 수백번을 들었던 구간
이번에 가사를 제대로 알게 되었다
자막을 만들며 영어로 번역 해보았다
020_호숫가.txt#1075
#0281
#0797
#0798
#0799
#0002
#0003
#0004
#0005
#0006
#0007
어떤 환대
2018년 11월 홍콩사회운동영화제의 초대를 받아 강정활동가들과 처음 함께 홍콩에 방문했을 때 불과 일년 사이에 벌어질 일들을 우린 예측할 수 없었다. 긴 시간 동안 홍콩 친구의 아지트였던 Autonomous8 에서 4박5일간 머무르며 댜양한 사회운동 연대체들을 만나러 홍콩 곳곳을 다닐 때나, 홍콩중문대학에서 공동체 상영 뒤 관객과의 대화를 할 때도 강정과 제주의 상황을 알리고 연대를 부탁하는 것에 촛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송환법 반대 투쟁이 한창이던 2019년 여름 4명의 홍콩 친구들은 제주에 와 대행진을 함께 걸었고 당시 시위 상황에 대해 공유해주었다. 그 후 몇달 동안 상황은 급속히 악화되었다. 강정활동가이자 영화감독 오두희의 영화가 2019년 겨울 영화제에 초청되어 우리가 다시 홍콩행을 계획했을 때 이공대의 시위가 지속되고 있었고 친구들은 곳곳에서 체포 당하고 구류되었다. 전날까지 안전 문제 때문에 출발을 고민했다. 미디어를 통해 본 것 만으로 상황을 판단하기 어려웠고 괜찮을 거라는 친구들의 말을 믿고 길을 나섰다.
그 방문에서 마주쳤던 것은 어떤 일상. 어쩌면 그대로 마지막이었을지도 모르는 숨을 쉬고 있던 무언가. 그 무거운 공기에 짓눌리지 않으려 애쓰는 친구들. 질식할 것 같은 거대함. 가장 소박한 희망도 지금 싸우지 않으면 안될 것 같다는 절박함. 그땐 작은 승리와 일상으로 주의를 기울이자며 다정하게 말을 건네 보았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조금 안일한 위로가 아니였을까 싶다.
만날 수 없던 2020년을 지나며 우리는 온라인으로 모여 간간히 안부를 나누지만 그립고 애잔한 마음은 더 커진다. 서로 손으로 만든 것들을 소포로 보내며 온기를 나누곤 한다. 보고싶은 친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