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_이치무라미사코_집에머무세요집없음에머무세요_기록.pdf#0992
[환대의조각들]X[서서울미술관 사전프로그램 언젠가 누구에게나] 2020년 11월 20일 금요일 서울시립남서울미술관 기획: 다이애나랩 진행: 유선통역: 하마무 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서울특별시 문화본부 박물관과 집에 머무세요/집없음에 머무세요(Stay Home/Stay Homeless) 유선:  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시립 남서울 미술관입니다. 지금부터 이치무라 미사코 씨, '집에 머무세요/집없음에 머무세요' 토크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현장에는 지금 다섯, 여섯 분 정도의 분들이 계시고, 관람객으로 오신 분들, 이 토크를 듣기 위해서. 그리고 줌으로도 지금 여러분들이 들어오고 계십니다. 일단 저는 오늘 진행을 맡은 다이애나랩의 유선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소개를 해주시겠어요? 하마무: 저는 통역을 맡은 하마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유선: 지금 어디에 계신지 너무 궁금한데요. 그것부터 여쭤볼까요? 이 질문을 시작으로 얘기를 진행해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이치무라: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이치무라 미사코라고 합니다. 지금 도쿄 중심에 있는 놀이터 안에 있는 육교 위에 있습니다. 여기 앉아서 이제 조금 있으면 저녁이 되는데요. 저녁이 되면서 여러분과 함께 밤을 마주하게 될 것 같은데 제가 지금까지 반 년 정도 경험을 했던 것, 그리고 생활에 대해서 같이 공유를 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제목에도 제가 쓰기는 했지만 지금 코로나 사태를 맞아 일본에서는 스테이 홈, 집에 머무르라는 이야기가 많이 얘기되고 있기는 하지만 제 자신이 집을 나가서 텐트 생활, 노숙 생활을 공원에서 한 지는 이제 17년 정도 됐는데요. 스테이 홈, 그 안에서 저희들의 생활이 꽤 많이 바뀌었다는 부분에 대해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스테이 홈이라는 말은, 노숙하는 생활 속에서 코로나를 어떻게 방지하고 막아낼지 생각했을 때 굉장히 혼란스러웠던 말입니다. 집에 머물러야 한다는 말은 실제적으로는 저희는 하지 못하는 일이고, 저희 홈리스들은 항상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면서 생활을 하기 때문에 집에 머문다는 것 자체가 저희한테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 말에는 애초에 집이 있고 집에서 살고 있다는 전제가 있는데요. 홈리스라는 존재는 예를 들어서 월세를 못 낸다든가, 경제적인 문제, 가족의 문제라든가 이런 부분에서 살기 위해서 집에서 도망친 사람들이라는 게 홈리스라는 존재입니다. 집이라는 것은 안전하지 않습니다. 저는 그래도 일단은 인터넷을 할 수 있는 환경에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코로나 예방이라는 방법은 저희한테는 전혀 도움되지 않는 정보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집이라는 규정이라든가 인터넷이라는 규정 바깥에 있다고 할 수 있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저희는 인터넷상에 올라와 있는 그런 정보를 스스로 생활에 맞추는 방식으로 다시 한번 재해석을 하면서 코로나 예방을 할 수밖에 없었어요. 다키다시(炊き出し)라는 것이 있어요. 도시 안에서 노숙하시는 분들한테 밥을 주는 것. 한국에서라면 노숙인 무료급식이라고 하는 것이요. 그런 것들이 예전에는 도시 안에서 많았는데 코로나 사태에서는 지원을 하는 사람들이 그런 걸 하기가 어려워지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지원을 해 주시는 분들도 여러가지 노력을 하면서 어떻게 지원을 계속해서 할 수 있는지를 고민해 주시기는 했지만, 그런 부분에 우리가 도움을 받으려고 의존하는 것보다는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남기 위해서 뭔가를 해야 한다는 것을 많이 느꼈습니다. 지원을 하는 사람들도 위험 부담을 가지는 것을 걱정했고 집에 있을 수 있는 사람은 집에 있는 게 낫다는 생각도 있었고, 감염병을 예방하기 위해서 물리적인 거리는 필요하다고 생각을 했고… 지원을 해주는 사람들에게 의존하지 않는 상태로 뭔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홈리스 정보센터라는 걸 만들었습니다. 사진에 보이는 것이 홈리스를 위한, 홈리스에 의한, 홈리스 정보 센터라는 걸 했습니다. 좀 작은데요, 놀이터 공원에서 이것이 자신들이 지키는 포인트라고 간판을 만들었습니다. 공원에 전시를 해서 사람들이 볼 수 있게 해놓았습니다. 어떤 내용이냐면요. 마스크를 사야 한다는 것과 어디서 마스크를 받을 수 있는지 그런 정보도 있고요. 그리고 저희 같은 경우에는 물건을 주워서 재활용하는 그런 생활을 주로 하고 있지만, 그런 방식이 감염을 확대시킬 수 있는 어느 정도 위험한 가능성이 있다는 걸 써서 조심해야 한다고 말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코로나19가 어떻게 감염이 된 다음에 증상이 어떤 것인지, 어떻게 증상이 나오는지 그런 정보를 박스에 써서 표시를 했습니다. 그리고 몸이 상태가 안 좋거나 그렇게 되면 어디로 가면 되는지, 누구한테 상담하면 되는지 그런 것도 썼고요. 그리고 몸 상태가 안 좋은 사람이 만약에 생겼을 때 주변 동료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만약에 아픈 사람이 있으면 과도하게 거리를 둬서 고립을 시키지 말고 어떤 거리를 유지해야 하는지, 그런 것도 많이 썼습니다. 공원에 있는 수도에 비닐을 설치해서 손을 잘 씻자, 이런 정보도 여기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 썼습니다. 이건 공유할 수 있는 간판을 만든 사진인데요. 공공시설 있잖아요, 도서관이라든가 비가 왔을 때 들어갈 수 있는 그런 장소들이 코로나 때문에 폐쇄되는 경우가 많았는데요. 비가 왔을 때는 여기는 아직까지 열려 있어서 들어가 쉴 수 있다든지, 여기는 폐쇄되었다든가 이런 정보를 공유할 수 있게… 여기 박스에 댓글을 쓸 수 있게 그런 식으로 만들었습니다. 여성이라든가 그리고 트랜스젠더라든가 그런 사람들이 도움을 큰 소리로 받을 수 없는 경우가 많은데…(*여성 홈리스라는 것이 드러나기 때문에) 어려운 상황에 있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고… 그런 사람들에게도 무료 급식 지원을 하고 있는 곳을 알려주거나… 서포트를 꼭 해야 한다는 식으로 하는 것보다는 다른 사람들과 비슷하게 하지만 그래도 좀 지켜보는 식으로 할 수 있는 그런 걸 했습니다. 실업자에 대해서 일을 제공하고 그런 것들도 코로나 때문에 멈춘 상황이었는데 그런 부분에 대해서도 정부에 항의 운동을 한다든가, 서로 어떻게 대응하면 좋을지 얘기를 하는 것을 했는데요. 어떻게 진행이 되고 있는 건지에 대해서 공원에 박스에 써서 전시를 하는 걸 했습니다. 이게 사진인데요. 공원에 이걸 전시하면 노숙하는 사람이라든가 동료라든가 그런 사람들이 와서 전시하고 있는 걸 보고 있는 모습이죠. 동료들이랑 얘기를 해서 어떤 간판을 전시할지 얘기를 했어요. 무료 급식이 없어졌기 때문에 동료들이랑 만나서 같이 밥을 해먹는 활동도 많이 했습니다. 저희는 사람들이 지원을 해 주는 지원금 같은 걸 받고 생활을 하기는 했었지만 그래도 부족했기 때문에 정부에 먹을 걸 달라고 요구를 했지만… 이렇게 조그마한 크래커, 이 파란색으로 보이시는 이걸 정부에서는 하루에 하나만 줬던 걸 항의를 하니까 하루에 2개로 늘려줬고요. 그래도 아직까지 부족한 상태여서 계속 먹을 걸 달라고 요구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계속해서 먹을 것도 없고 일도 없고 무료 급식 지원을 해 주는 사람도 없는 상황에서 전국에 있는 홈리스들도 똑같은 상황에 있고, 빈곤한 사람들도 똑같은 처지에 있다는 걸 계속해서 정부에 항의하는 활동을 했습니다. 일본에 사는 사람들한테는 생활 보장, 한국으로 치면 재난 지원금인 것 같은데 그런 것들을 홈리스에게만 돈을 지급하지 않는 상황이 되어서… 정부 기관에 항의를 하러 나가기도 했습니다. 외국인도, 감옥에 있는 사람들도 받을 수 있었는데요. 인터넷으로 접속해서 신청을 하는 방식이었고… 홈리스만 배제하는 상태로 지급이 되었었어요. 인터넷에서 그런 정보를 얻은 동료가 있으면 그 사람이 다른 사람들한테도 얘기를 해서우리도 이걸 받을 수 있지 않느냐, 이런 얘기를 했지만… 그런데 저희 같은 경우에는 주소가 없기 때문에 신청을 할 수가 없었고, 전국에 있는 홈리스를 지원하는 단체들과 함께 정부 관사 앞에 가서 앉아서 항의 운동 같은 것도 했습니다. 이렇게 항의 운동을 많이 하고 텐트도 치고 그러기는 했지만 정부는 생활보장을 계속해서 주지는 않았고 주소를 만들어야 한다는 대답만 받았습니다. 거주 상태가 애초에 좋지 않고, 도쿄 같은 경우에는 월세가 너무 비싸고… 싼 아파트 같은 것도 거의 없어요. 만약에 시설이나 기숙사 같은 곳에 들어가게 된다면 큰 방에 많은 사람들을 집어넣고, 그런 식으로 생활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오히려 감염될 위험이 높습니다. 저희 같은 경우에는 거리에서 연결을 하면서 사는 사람이기 때문에 스스로 시설의 방이라든가, 기숙사라든가 그런 곳에 들어가고 싶지 않다는 사람들이 거리에 남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코로나 사태를 스테이 홈리스, 라는 인식을 가지고 넘어가자는 생각을 했고요. 그리고 어떻게 보면 그런 부분들은 스테이 홈이나 스테이 홈리스라는 부분의 엄청 큰 부분을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이게 잘 보기는 어려우시겠지만 여기 보시면 큰 빌딩 안에 예전에는 앉을 수 있는 벤치가 있었는데 코로나를 이유로 폐쇄되었고요. 도시 안에서 쉴 수 있는 곳이 없어졌습니다. 저는 집이라는 게 전혀 안전하지 않다고 생각하는데요, 집에 머물러야 한다는 말이 계속 있어 왔죠. 코로나 이후 한국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지만…가정 폭력이라든지 아동 폭력이라든가 그리고 나이 많은 사람들에 대한 폭력이라든가 그런 학대들이 엄청 많아졌고 그리고 아직까지 잇따라 그런 사건들이 발생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노숙을 하면서 쌓은 지식, 거리에서 잘 사는 방법이라든가 그런 부분을 서로 공유하면서 집 바깥에서 살 수 있는, 그러니까 집 안에서 폭력을 당하는 사람 그리고 역으로 폭력을 휘두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바깥에 나가서 살 수 있는 그런 환경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집 밖에서도 서로 좋은 지식이라든가 그런 걸 공유하면서 살 수 있다고 생각해요. 또 코로나 사태 안에서 사회적으로 스트레스가 엄청 높아지고 있는 상황인 것 같습니다. 그런 스트레스는 어디로 가냐면, 소수자, 마이너리티에 대한 폭력이나 홈리스에 대한 습격이라든가 그런 방향으로 가는 것이고요. 저도 그런 습격을 당한 적이 있고많은 수로 그게 증가하고 있는 상황인 것 같습니다. 여러 피켓을 코로나 상황에서 만들었는데요. “집에서 여성들을 죽이지 마라, 거리에서 여성들, 홈리스를 죽게 두지 말라” 고 했고요. 이런 걸 만들어서 공원이라든가 공공시설에 붙이고 다니거나 그런 걸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소수자 안에서도 소수자인 사람들이 더 심각한 폭력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데요. 홈리스 안에서도 특히 여성이 습격을 당해 살해당했던 사건이 있었고요. 그리고 집 안에서도 나이 많은 여성이 학대를 당해서 살해당한 사건도 있었고요. 최근의 데이터를 봤는데요. 그것에서는 여성의 자살률이 80%가 증가되었다는 그런 슬픈 얘기도 있었습니다. 노숙하는 여성이 살해당했는데도 불구하고 조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고 본인이 누군지도 모르고 흐지부지하게 끝나는 그런 경우도 되게 많습니다. 이런 여성들이 습격당하고 살해당하는 그런 사건들에 정말 충격을 많이 받았고 절망적인 기분 들어요. 그런 슬픈 마음을 공유하고, 이렇게 힘들고 괴로운 마음으로 혼자 있으면 너무나도 힘드니까 서로 얘기를 하고 공유를 하자는 이야기을 만들어서 나눠주기도 했습니다. 이 사진을 보시면, 사진이 작아서 죄송하지만 오른쪽 아래 사진이 제가 살고 있는 텐트 마을인데요. 여기 같은 경우에는 코로나 사태에서 사람들이 모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고 있고 사람들이 모여서 인터넷상에 있는 그런 정보가 아닌 우리가 사는 데 있어서 중요한 정보를 서로 공유를 하고 그렇게 살아남기 위한 정보 교환을 하고 있습니다. 사진은 여기까지입니다. 말씀드렸지만 인터넷에 펼쳐져 있는 세계와는 전혀 다른 세계를 저희는 살고 있습니다. 지금 제가 여러분과 이렇게 줌으로 연결되고 있기는 하지만요. 공원에서 유일하게 인터넷이 잘 되는 곳을 찾아서 여기까지 왔고요.(*육교 위) 그리고 중간에 배터리가 끊어질 수 있기 때문에, 배터리를 많이 빌려서 무겁게 들고 왔습니다.(웃음) 이런 저희가 정보를 어떻게 얻냐면요, 대부분이 찌라시 형태, 그리고 박스 간판을 만들어서 거기에 글을 쓰는 방식, 사람들이 직접 모여서 그런 정보를 교환한다든가 그런 방식으로 하고 있는데요. 그런 것들을 코로나 이전부터 더 중요해지고 필요해진 상황입니다. 사회적으로는 새로운 삶의 방식이라든가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삶의 방식을 추진하는 상황이기는 하지만 저희 같은 경우에는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정보를 얻는 방식이 저희한테는 안 맞기 때문에 스스로가 검색을 하고 스스로가 생각을 하고 사람들이 직접 만나서 서로 확인하는 그런 과정을 거쳐서 또다시 진이라든가 찌라시 같은 것으로 다시 정보를 써서 밖으로 보내는 방식을 하고 있습니다. 인터넷상에 있는 그런 정보들은 저희에게는 사실 쓸모없는 것이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부분들을 우리의 세계와 인터넷 세계가 분단이 된 상황이라고 생각이 드는데요. 이 상황에서 호스피탈리티(환대, hospitality)가 무엇이고, 무엇을 호스피탈리티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홈리스인 사람들과 어떻게 공유를 할 수 있는지, 여러분과 함께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유선:  일단 10분 쉬면서 질문을 한 가지씩 채팅방에 올려주시고、또 현장에서 질문을 받은 다음에 그걸 기반으로 얘기를 해 보는 게 어떨까요? 지금 이야기를 따라가는 데 조금 바빠서 아직까지 질문을 남겨주신 분들이 없으시기는 해요. 그렇지만 지금 들은 얘기를 바탕으로 혹은 이 자리에 참석하기 전에 마음속에 품으셨던 질문이 있다면 그것을 줌 채팅방에 남겨주셔도 좋고요. 현장에서 저희의 마이크를 넘겨 받아 얘기를 직접 해 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질문이 들어왔는데요. 제가 읽어볼게요. “이치무라상을 이렇게라도 만나뵙게 되어서 너무나 기쁘고 반갑습니다. 좋은 기회를 만들어주신 유선님과 하마무님께도 감사드립니다. 이치무라상, 소중한 이야기 나눠주셔서 감사하고 마음 아프게 들었습니다. 점차 인터넷을 통한 연결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는 상황에서 오늘 이야기는 소중했습니다. 질문인데요. 제가 아까 잠시 10분쯤 자리를 비운 사이에 이야기가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만 재난지원금이 주소가 없는 야숙자에게, 홈리스들에게 지원되지 않아서 어려움을 겪었다고 알고 있는데요. 어떤 방식으로 대응하셨고 현재 어떤 상황인지 궁금합니다.” 이치무라: 정부는 주소가 없는 사람한테는 재난지원금을 지원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계속해서 유지하고 있고요. 그리고 그거에 대해서 저희가 계속 얘기를 하고 항의를 해왔어요. 그런 와중에 저희를 지원 해주는 분들 중에서 예를 들어서 빈 방이 있는데 거기에 주소를 등록해도 된다든가 지원 단체 안에서 주소를 등록하게 도와주는 사람들도 있기는 했습니다만, 애초에 모르는 주소에 등록하는 걸 두려워하는 사람도 있고그리고 그 안에서 일단 등록을 하고 싶고 등록할 수 있는 사람들은 등록을 하기도 했지만, 원한다고 모두 다 등록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이건 일본의 호적제도와도 관련이 있어요. 제국주의적인 호적제도가 남아 있기 때문에 호적이 없는 사람은 주소를 등록을 못 하고요. 그리고 또 자신의 주소를 정부에 알리는 것을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죠. 정부에 주소를 등록하면 어떤 곳에 사용될지 모르겠다. 그런 것도 좀 있었고, 어쨌든 간에 등록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 있기는 했지만 저희 주변 사람들 중에서도 주소 등록을 해서 재난 지원금을 받은 사람은 3분의 1 정도밖에 안 됩니다. 그리고 주소 등록을 했던 사람들이 받을 수는 있었지만… 지금도 이런 불합리한 상황에 대해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계속 항의를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유선: 네. 일단 질문이 하나 더 올라왔으니까 그것까지 읽고 자연스러운 논의를 해 보면 어떨까 합니다. 다른 질문, 저는 짧은 소감을 전합니다. “무엇이 얼마나 있는지를 전제로 계획과 대처가 이루어지는 흐름 안에서 없음에 대한 이야기가 소중했습니다.” 저희 한글 제목이 '집에 머무세요/집없음에 머무세요'였잖아요. 마지막 말이 그래서 나온 얘기인 것 같아요. “무언가가 없다고 해서 논의할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도 듭니다. 오히려 누구나 없는 것이 다양할 수 있는데 그것을 들여다 보는 것이 더욱 안전한 대화를 만들어낼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의 이야기는 특별한 사연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로 들리기도 했습니다.” 제가 조금 덧붙여서 설명을 드리자면 저희가 지금 있는 이곳은 남서울 미술관이라는 이름의 장소이고 앞으로 지어질 서서울미술관이라는 곳을 상상해볼 수 있는 사전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잖아요. 그리고 이 프로그램은 올해랑 내년에 이어질 <환대의 조각들>이라는 공공예술 프로그램의 일부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다이애나랩의 멤버로서 <환대의 조각들>이라는 프로그램을 올해와 내년에 기획할 때 코로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요. 대부분 요즘에는 코로나 때문에 직접 대면 프로그램이 불가능하니까, 이렇게 줌 혹은 인터넷으로 접속을 해서 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많이 전환을 했었잖아요. 이 몇 개월 동안. 저희가 처음에 이치무라 미사코 씨한테 같이 <환대의 조각들>을 하자고 이야기를 했을 때, 그렇게 간단하게 웹으로 대체해서 참여를 할 수 있는 상태는 아니었어요. 왜냐하면 인터넷에 무언가를 올리는 형태로 표현을 했을 때 여기에 접속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라고 했을 때 분명히 거기서 배제돼 있는, 인터넷이 없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러한 존재로서 활동을 다른 방식으로 하고 있는 분이었기 때문에요. 결국에는 저희가 내년 초에 출판물을 낼 건데 거기에 실제로 웹에 올리지 않는 형태로 무언가 우편물, 찌라시, 아까 이야기했던 진 같은 걸 직접 보내주시면 출판물에 싣는 형태로 저희가 같이 참여를 하기로 했었거든요. 그리고 지금 남서울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서서울미술관 사전 프로그램> 기획하는 여기 계시는 여러분들과 다이애나랩이라는 저희가 같이 저쪽에서 전시를 하고 있기도 하고 이밖에 다른 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요. 일단 남서울미술관이라는 이 장소에 물리적으로 들어올 수 없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분들이 저희에게는 참여작가였어요. 휠체어를 타고 있다든지 중증의 발달장애가 있다든지. 이분들과 이 장소에서 같이 무엇을 해볼 수 있을까를 계속해서 생각해오며 전체를 바꿔가며 프로그램을 해왔던 것 같아요. 아까 마지막에 소감을 나눠주신 분이 서로 없는 것에 집중하면 좀 더 안전한 대화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말씀을 주셨는데, 서로가 어떻게 안전하게 함께 있을 수 있는 순간을 만들 수 있을까 고민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들어오셨던 엄청나게 큰 경사로, 저걸 미술관 앞에 임시로 설치해서 이 안에 일단은 휠체어가 들어올 수 있게 했고요. 그렇지만 저 경사로를 설치했다고 해서 모두가 이 공간에 안전하게 함께 무언가를 나누면서 있을 수 있는 건 아니었죠. 예를 들면 저걸 설치했다고 해서 미술관에 물론 이 건물이 지어진 이후로 최초로 휠체어 입장이 가능했던 엄청난 순간이 만들어졌지만, 그래도 홈리스의 경우를 생각해보면 저걸 설치했다고 해서 갑자기 여기 와서 미술 관람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든지, 이 안에서 전시를 할 수 있다든지 하는 상황도 아니잖아요. 우리가 교차적으로 고려해야 할 많은 상황들이 있는데, 어쨌든 지금 우리가 여기서 이 프로그램을 기획하게 된 맥락은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 맥락에서 좀 얘기를 나눠보면 어떨까 했어요. 이치무라: 많은 사람들과 연결되는 것은 사실 살기가 편해진 것일 수도 있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과 연결되면 오히려 다른 기회나 자유가 적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많은 사람들과 연결이 된다는 것은) 자신들이 사는 세계를 좁은 규정에 빠지게 만들 가능성이 있기는 하지만, 그 안에서도 그런 규범을 넓히는 세계를 만들자고 하는 그런 시도라고 저는 생각을 하고요. 그리고 자신들이 사는 그런 환경이라든가 위치라든가 그런 것들이 사회에서 보면 어느 하나의 삶의 방식이고 작고 좁은 삶의 방식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저희 삶의 방식은 여러 가지 상황에서 배제된 사람들이 서로 함께 뭔가를 만들어서 뭔가를 만들어내면서 사는 것이라고 생각을 할 수도 있고요. 그런 사람들이 만나서 살아가는 데 있어서 필요한 것들, 중요한 것들을 서로 얘기해서 교환하고 만들어내는 것 자체가 크리에이티브한 것, 창조적인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큰 세계에서 보면 어떻게 보면 '없음'이라는 것일 수도 있지만, 뭔가가 변하지 않는 것이라는 것은 사실 없는 것이고, 규정을 할 수 있는 것은 없고, 무언가를 남기는 것보다 삶에 있어서 힘을 다 같이 서로 교환을 하면서 만드는 것, 그런 공간을 만드는 것에 대해서 저는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유선: 채팅방에는 올라오지 않았지만 다른 개인적인 메시지로 이치무라 씨에 대해서 개인적인 설명이 좀 더 듣고 싶다, 코로나 이후에 스테이 홈, 스테이 홈리스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들었는데 어떤 분인지 개인적인 맥락이 궁금하다면서 자기소개를 부탁하신 분이 있었어요. 조금 더 자세하게, 어떻게 이런 활동이나 혹은 표현을 하고 계신지 어쨌든 기본 정보가 조금 더 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있었는데 혹시 해 주실 수 있을까요? 그분이 또 다른 질문을 정확하게 주셨는데 이치무라 씨는 언제부터 노숙인 운동을 시작했는지 그리고 그 전에는 어떤 활동을 하셨는지 그리고 지금 노숙인 운동 이외의 어떤 활동을 하고 계신지, 하고 있다면 그걸 듣고 싶다고 하십니다. 이치무라: 저는 2013년에 노숙 생활을 시작했고요. 그때 도쿄는 신자유주의적인 그런 사회였고, 그때 당시에는 중동에 자위대를 파견한다든가 크게 제가 봤을 때도 사회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많이 느꼈습니다. 그 변화를 느끼면서도 그때는 사실 스스로 나와 상관없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삶에 있어서는 예술에 관련된 일을 했었고요. 그 일을 하면서 계속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먹고 살기 위해서는 계속 위에 가야 하고, 좋은 생활을 해야 한다는 요구에 따라서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 똑같이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계속 그런 생활을 해왔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그렇게 계속 위로 올라가면서도 끝에 뭐가 있는지 생각했을 때… 그것에 대해 매력적으로 느끼지는 못했어요. 그리고 그때 당시에 뭔가 좋은 예술, 좋은 아트라고 사회적으로는 사람들한테 평가를 받고 있는 것들을 봤을 때 솔직히 거기에 대해서 매력을 느끼지 못했어요. 그런 것들이 전혀 아름답다고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대학이라든가 학교 교육이 어떻게 보면 세뇌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런 트레이닝을 계속 받아왔지만 그걸 열심히 해도 결국 마지막에 기다리고 있는 것들이 어떤 가치가 있는지 생각했을 때… 가치가 있는 것 같지 않았어요. 그 안에서 무언가를 만들어내야 하는데, 스스로 매력을 느끼는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싶은데 그게 무엇인지에 대해서 계속 생각을 해왔고… 그러다 발견했던 것이, 공원에서 노숙하는 사람들은 큰 돈과 상관없이 자신들의 세계를 가지고 있고 스스로 뭔가를 만들어내서 자유롭게 살고 있다는 것. 그것이 매력적으로 느껴졌어요. 홈리스인 사람들이 오히려 어쩌면 더 좋은 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어요. 어떤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계속 위로, 위로 올라가서 좋은 생활을 해야 한다, 이런 상황은 마치 좋은 엔진을 가지고 있는 비행기를 탄 채로, 기술적으로 더 진보된 것들을 끝없이 습득해야 하는 것과 같죠. 저도 그런 삶에 있었다가 갑자기 낙하산을 타고 '야호!' 하면서 바깥으로, 아래로, 기분 좋게 불시착했어요. 도시에는 아직 사용할 수 있는 것이 버려져 있는 경우가 많아요. 그걸 가지고 주워와서 사람들과 함께, 동료들과 함께 나눴고요. 지금 제가 입고 있는 것도 모두 원래 쓰레기로 간주 되었던 것이었죠. 일상 생활에서 쓸 수 있지만 버려진 물건이나, 아니면 이제 사용하지 않는다고 누군가 준 것, 그런 것들로 저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회적으로 뭔가 도움되지 않는 것, 쓸모없는 것. 사회적인 가치에서 벗어나서 무언가를 만들어내거나, 우리 사회에서 뭔가 사용할 수 있는 다른 가치가 있는 것을 만들어내는 것을 노숙하는 사람들이 하고 있는 일상이었고요. 그런 사람들의 삶에 더 참여를 하고 싶다고 느꼈어요. 참여를 하고 싶은 삶의 방식이라고 느꼈습니다. 그리고 제가 노숙 운동을 하고 있다는 말씀을 드릴 때도 있지만, 저 스스로는 노숙 운동을 하고 있다는 생각은 별로 없고요. 그것보다는 자신들의 생활을, 방해를 받고 싶지 않고 방해 받지 않게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하는 것이 맞는 것 같아요. 노숙을 하고 있는 여성의 위치라든가, 입장이라든가 그런 것들에… 어떤 위협들이 많은데요. 그 안에서 남성이든 그리고 트랜스젠더이든 모여서 서로 먹는 것의 정보라든지 어디서 잘 수 있는 건지 그런 정보들, 스스로 삶에 있어서 필요한 그런 정보를 교환하면서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회적으로 뭔가 가치가 있는 그런 형태가 아닌 방식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유선: 일단 여기 질문 올라온 것을 더 읽어볼까요? “한국도 그렇지만 일본은 훨씬 더 코로나 상황이 심각해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회적 불안이 커지고 있을 것 같아요. 같이 생활하시는 노숙인분들은 그 불안들을 어떻게 견디고 있을지 궁금합니다. 집없음에 머문다는 것이 추상적인 형태 같은 느낌이지만 현실적으로 집없음에 머물며 코로나 상황을 보낸다는 것이 잘 상상되지 않습니다.” 이렇게 하나 있었고요, 이어지는 다른 질문으로는 “코로나 상황에서 나와 너라는 경계가 명확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그것이 안전하다고 미디어가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정부나 미디어 차원이 아니라 개인의 차원에서 재해의 상황을 누군가에게 소식을 알린다는 것에 대해서 상상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박스나 종이, 진 방식으로 소식을 알릴 수 있다는 게 지금 상황에서 오히려 신선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저는 지금도 몇 분마다 휴대전화로 재난문자, 재해문자를 받고 그 소식들이 가끔은 귀찮기도 합니다. 무엇을 발화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기술적으로만 접근한 게 아닌가 하는 반성도 듭니다. 질문은 아니고 소감입니다.” 이렇게 2개가 코로나 상황에 대한 질문이고요. 이어서 하나를 더 소개하자면 “일본은 코로나 이후 DV, 가정 폭력 핫 라인에 있어서 피해 여성을 지원하고 있다고 알고 있는데 스테이 홈리스 맥락으로 입소하지 않고 있는 건지, 유명무실한 건지 궁금합니다.” 가 있었습니다. 또 “개인적인 차원에서 정보를 박스나 종이로 알릴 수 있는 게 상상을 못 하겠다.” 라는 소감이 있었습니다. 이치무라: 질문을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세 가지 얘기를 들었는데요. 첫 번째로는 코로나 상황에서 노숙하는 사람들의 불안에 대한 것인데요. 당연히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불안을 많이 가지고 있고요. 인류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그런 불안들도 있고, 그렇기 때문에 그러니까 고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우선은 이 상황에서… 어떻게 예를 들어 식사를 할 때 어떻게 식사를 나눌 수 있을까? 라든지 감염을 예방하면서도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어떻게, 누구한테 나눌 수 있는가? 나눴을 때 어떤 리스크가 있는가? 어떻게 해야 할까? 계속해서 고민하고 얘기를 하는 시도를 계속했고요. 그런 상황에서 동작을 어떻게 해야 할지 서로 많이 확인도 했고요. 삶에 있어서 생존을 위한 그런 시도였던 것 같습니다. 이 상황에서 불안이 있어도 어쩔 수 없고, 완전히 자신의 불안을 컨트롤하고 지워버릴 수는 없지만, 그것에 대해서 컨트롤 하려고 해보는 그런 시도를, 살기 위해서 그런 시도를 계속해서 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불안을 지워버릴 수는 없지만 그 불안이 타인에게 폭력적인 아웃풋으로 나타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런 호소를 저희는 계속 해왔어요. 노숙한다는 것 때문에 여러 피해를 입는 그런 사건들도 계속 있기는 했지만요. 그 안에서도 고립되지 않고, 각자가 괴로웠던 것, 공포스러웠던 것, 힘들었던 것, 그런 것들을 없는 것으로 하지 않고, 만나서 얘기를 하고 서로 식사를 나눠서 밥을 먹거나… 여기서 식사를 같이 하는 건 굉장히 소중하고 중요한 것 같습니다. 여기까지입니다. 이 코로나 상황에서 바깥에서 생활하는 것이 약간 상상하기가 어렵다고 말씀을 하신 분들도 있었죠. 일본 같은 경우에는 실업자가 코로나 상황에서만 100만 명이라고 이야기 되고 있고요. 그런 사람들이 굉장히 많이 홈리스가 되어 노숙하는 상황이 증가되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정부가 하는 지원 같은 경우에는 월세 지원이고, 이건 어떻게 보면 건물주나 땅 주인을 지원하는 것이죠. 그걸 소유하고 있는 사람에게 지원하는 것이고… 저는 건물주나 지주보다는 세입자에 돈을 지원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월세를 낼 필요가 없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고요. 안 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땅을 개인이 소유할 수 있다는 개념 자체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어요. 제 경우에는 공간을, 자리를 공유하는 활동을 계속 해왔는데요. 지구에서 하나의 위치, 땅이라는 것을 소유한다는 개념은 정말 무서운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집이라든가 자본, 특히 이런 재난이라는 상황에서 다시 한번 자본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동시에 가부장제에 대해서도 생각을 할 수 있고, 가부장제에서 집 바깥에 도망 나오는 그런 사람을 저는 응원하고 싶고 그런 사람들과 함께 살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집에서 나와서 산다는 것은 정말 솔직히 말하면 쉬운 일은 아니죠.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숙 생활을 하는 그런 홈리스들이 있다는 것 자체가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집에서 나와도 살 수가 있다고. 그리고 지금 코로나 때문에 홈리스가 된 사람들도 아주 많죠. 저는 그런 사람들과 함께 살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유선: 여기 현장에 와서 토크를 듣는 분들 중에서 혹시 질문이 있으면 한번 들어 보면 어떨까 하는데, 손을 들어주시면 제가 질문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후반 부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목적지를 향해서 잘 가던 비행기에서 13년에 처음 노숙을 시작하면서 뛰어내렸다는 표현이 인상적이었는데요. 코로나 상황을 맞으면서 우리는 어쩌면 강제적으로 다같이 이 비행기에서 뛰어내려야 하는 상황을 맞이하는 것 같아요. 여태까지 했던 걸 할 수 없는 상황, 해서는 안 되는 상황, 둘 다 말씀을 하셨죠. 어떻게 코로나19 이후의 세계에서 새로운 삶의 방법을 찾아나가면 좋을까 각자 생각을 하고 있을 텐데, 어쩌면 13년 전에 미리 해보신 분의 미래를 이 자리에서 저희가 전달받은 것 같은 생각도 듭니다. 이치무라: 코로나 상황에서 세계에서 스테이 홈이라는 얘기가 계속 나오고 있기는 하지만 여기서 가정 내 폭력, DV(domestic violence)의 문제는 꽤 심각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학대의 문제도 심각하죠. 일본의 경우에는 감염병을 예방하는 차원에서 정부에서 뭔가 하고 있기는 하지만, 보통 코로나 관련 지원을 받으려면 인터넷에서 스스로 검색해 정보를 얻는 경우가 많아요. 아니면 정부에 전화를 한다든지요. 그런데 집에서는 집 안에서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과 같이 있는 경우에는 전화나 인터넷에 접근이 어려운 경우가 굉장히 많고요. 예를 들어 그런 사람들은 관련 정보를 얻기 위해, 가족이 없는 사이에 몰래 전화를 한다든지, 연락을 한다든지, 바깥의 지원을 받기 위해 집 밖으로 나가야 하는 상황이 많아요.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도망가듯, 바깥에 나가서 공원의 벤치에 앉아 있는 사람들도 많죠. 갈 데가 없어서 그냥 앉아있는 경우도 많고요. 그런 경우에는 인터넷에 연결하기도 힘들고, 외부의 지원이라는 그런 상황 자체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도 많고요. 그리고 홈리스, 그러니까 노숙자라고 하면 남성 중심적인 이미지가 강한데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여성이나 트랜스젠더 노숙인들의 그룹인 ‘노라’ 라는 활동을 하고 있어요. 밤에 그런 사람들이 보이면 길거리에서 말을 건다든지, 저희가 만든 진(zine)을 건네주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홈리스라는 단어를 저 스스로는 굉장히 긍정적인 단어로 사용하고 있지만, 노숙자, 홈리스의 이미지는 남성 이미지가 사회적으로는 강한 것이기도 하고요. ‘노라’라는 그룹의 일원으로 제가 다른 사람들에게 말을 걸 때, 저는 노라라는 그룹에 있고, 홈리스입니다, 라고 말을 걸기도 합니다. 여기서 노라(のら)라는 말은 일본어로 하면, 길고양이(野良猫, 노라 네코)를 말할 때처럼 뭔가 바깥의 떠돌이 생활을 하는 것을 부르는 뉘앙스의 단어이기도 해요. 물론 밖이라는 뜻도 있고요. 입센의 <인형의 집>이라는 희곡이 있는데요. 그 안에서 주인공 여성이 남편도, 아이도 버리고 집을 나가는 이야기가 나오죠. 원래 현모양처였던 여성이 집에서 나가는 이야기인데, 그 주인공 이름이 노라이기도 합니다. 유선: 질문이 더 들어왔는데 저희가 약속한 시간이 거의 아슬아슬해서, 질문을 보니까 조금 더 시간을 가지고 길게 이야기가 되면 좋을 것 같은 질문이에요. 환대에 대해서 물어보는 질문이 하나 있었고 또 하나는 이제 공공 공간에 대해서 물어보는 질문인데요. 제가 이것을 이치무라씨에게 서면으로 공유하고 신청해 주신 분들께 나중에 답변을 전달해드리는 방식이면 어떨까 합니다. 오늘 진행해 주신 이치무라 미사코씨의 말씀을 같이 들으면서 마무리를 하면 어떨까 합니다. 이치무라: 오늘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아마 한국, 그리고 서울에도 노숙을 하는 사람들이 많을 거예요. 상황들이 좀 다를 수는 있지만 생각하고 있는 것들 그리고 곤란함, 힘듦, 고통, 삶에 있어서의 지혜, 시도들, 그런 공통점들이 많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사회의 메인 스트림에 있는 지원의 방식이나 생활을 좋게 만드는 그런 리소스 같은 것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다르게 필요한 것들이 있는 사람들이 소수자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생활에 있어서 사소한 시도들이라든가 기획들을 이번 [환대의 조각들] 프로젝트를 통해 새로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유선: 네. 감사합니다. 그리고 오늘 수어 통역을 맡아주신 김정현, 이화정 선생님 감사드립니다. 문자 통역을 맡아주신 에이유디의 전승욱 선생님 감사드리고요. 줌 촬영과 스트리밍을 맡아주신 이은정 프로덕션 팀 감사드립니다. 그러면 마칠까 합니다. 모두에게 보내는 박수로 끝낼까요? 감사합니다. *서면으로 받은 질문과 답변 (질문1) 이번 프로그램에서 다루는 주제가 모두에게 의미있고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평등하게 환대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확실하지만 <사람,장소,환대>라는 책에서 소개하듯 무조건적인 환대 즉, 신원을 묻지 않고, 보답을 바라지 않고, 초대되지 않은 자에게도 자리를 내어주는 환대는 쉽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내 가까이, 그리고 내 가족 곁에 타인을 위한 자리를 내어주는 환대의 행위는 극단적으로는 모르는 사람이 나에게 어떤식으로든 위험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또한 감수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니까요. 이상적으로, 그리고 장기적으로 우리 모두를 위한 일, 즉 모두가 함께 살 수 있는 일의 시작점이 환대일지라도 당장 내 앞의 삶에서, 나의 개인적 영역에서 나의 것, 나의 자리를 타인에게 오롯이 나누어 주는 것이 어디까지 가능할까요? 질문은 어떤 개인적 차원의 실천이 더불어 사는 삶에서 가능하고 또 의미가 있을까요? (답변1) 질문 감사합니다. 말씀대로 쉽지는 않을 겁니다.간단하지 않기 때문에, 함께 살기 위해서, 무엇이 가능한지, 어떠한 거리가 필요한지 등을, 상상이나 사고하는 것만이 아니고, 여러가지 실천을 스스로 시험해 오고 있습니다. 그건, 물론 위험이 따릅니다. 지난번 이야기에서도 언급했지만, 그것은 낯선 사람뿐만 아니라, '가족'이라는 자신은 잘 알고 있다고 믿는 타인에게도, 위협하거나 위협받거나, 때로는 대치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또한 자기 자신에 대해서조차 상처를 주거나 비난하거나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더불어 사는데 있어서, 결과적으로 우리가 완전히 안심할 수 있는 자리의 확보는 거의 불가능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가장 중요하고 지켜야 할 것은 더불어 사는 터전을 함께 만들면서 살기 위한 여러 가지 아이디어와 표현의 가능성이 거기에 확보되어 있는가에 대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 차원에서의 그 실천이, 의미가 있는지 어떤지는, 각각 다른 것일지도 모릅니다만, 저 자신은 도저히 혼자서 살아갈 자신은 없고, 하지만 생활을 같이 한다고 규정되어 있는 '가족' 규범에는 전혀 동의할 수 없기 때문에, 자기 자신의 생활을 위해서, 아웃사이더과 함께 느슨하게 유동적인 관계를 만들어 갈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질문2) 점점 공공공간-공원 같은 곳들이 사유화되어가는 상황에서 시민 공간들, 공공 시설들이 홈리스 생활에서 연결해서 이용할 수 있는지. 한국도 일본도 그런 사례가 없는 것 같은데, 없다면 어떻게 홈리스로서, 미래의 공공공간을 상상하시는지. (답변2) 코로나 이후 노숙을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하나는 너무 비싼 월세 문제입니다. 어느 도시라도 그렇겠지만, 거주하는 데 있어서 주민의 생명에 앞서 지주나 집주인이 더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습니다. 너무 비싼 월세,지주의 땅값,낼 수 없는 경우 나가야만 하는 임대 계약을 모두 폐지하면 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하거나 또는 수명을 줄이는 노동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합니다. 일본에서는 입주자의 수입에 따라 저렴한 임대료를 받는 공공 단지 등은 철거되기만 합니다. 또한 어느 도시에서나 젠트리피케이션의 흐름이 강해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느 날 인근 공원이 민영화되고 노숙자들이 쫓겨나는 일이 벌어졌다면, 잠시 후 주변 아파트들의 월세가 오를 거예요. 이런 흐름에 가장 빨리 영향을 받는 노숙자가 쫓겨나는 일은, 99% 스스로에게 닥쳐오는 문제로 보기에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주변의 사건으로부터 말하면, 공원 등 공공의 장소에서 생활하고 자고 있는 노숙자에 대해서 '멋대로 점거하고 있다' '마음대로 생활하고 있다'라는 말을 항상 말합니다. 사람은 잠을 자야 살 수 있습니다. 누울 수 있는 몸은 어떻게든 그 자리를 점거합니다. 그리고 살기 위해 먹기도 하고 자기도 합니다. 자기 집이나 집세를 내고 생활하는 경우 '멋대로 점거하고 있다' '마음대로 생활하고 있다'고 비난할 수 없습니다. 돈을 내고 있는지 아닌지에 따라 그 사람의 존재를 인정할지 말지를 판단하고 있다는 것이죠. 저는 사람의 존엄성에 대해 생각하고 싶습니다. 빈곤자의 신체와 생활공간이 더이상 위협받지 않도록 다양한 빈곤층이 생활을 위해 활용할 수 있는 공공장소를 넓혀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질문을 받고 더 모두가 공공장소에서 풍부하고 자유롭게 산다는 것은, 어떠한 장소에서 가능할지를 상상하는 것도, 여러 입장의 사람들과 이야기해 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1_이치무라_미사코_집에머무세요_집없음에머무세요.txt#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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